아빠 벌써 소천하신지 400일이네요.
공교롭게도 그 날이 제 생일과 겹치게 될 줄이야!
모처럼 뽀야 생일이라고 가족들이 신경 많이 써주고 있어요.
그간 못 먹었던 라볶이도 시켜먹고.
좋아하는 빵도 먹고, 샤브샤브도 준비 중이랍니다.
슬픔의 총량은 누구에게나 일정하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살면서, 누구나 슬픈 일을 겪을 수 있기에.
인생을 놓고 보면 그 슬픔의 총량이라는 게 일정한 것 같아서요.
발현되는 시기와 집중도가 다른 것 뿐이라는 생각이에요.
제 슬픔은 아빠 소천하신데에 몰아서 다 써버렸는지도 몰라요.
이보다 슬픈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울우울 했었어요.
이제는 웃으며 아빠 얘기를 하고,
즐겁던 시절을 회상하고 그럴 수 있게 됐어요.
제가 매일 저녁에 문안인사 드리잖아요.
제 기도가 거기에 가 닿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요.
우리 마지막 가족사진 보면서.
슬쩍 미소짓고 있는 아빠 사진 보면서.
하루에 있었던 일을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는 그 시간이.
잠들기 직전에 건네는 그 속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아빠는 걱정이 참 많으셨는데.
주로 뽀야에 한정해서 말이죠.
그래도 뽀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없이 고통없이 편히 쉬세요.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 허덕이고 있지만.
나름 마무리 잘 하려고 노력중이니 말이에요.
우리가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목소리도 촉감도 다시 느낄 수 없는 단절된 세상 속에 속하지만.
마음만은 거기와 여기를 넘나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은 거 보면, 맛있는 거 먹을 때면.
아빠를 떠올리고 화제거리로 삼게 되는 것 같아요.
영혼만이라도 같이 웃고 즐기자고 말이지요.
[CATCH YOU CATCH ME]라는 애니메이션 노래가사가 참 와 닿아요.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이제 숨바꼭질은 그만]
[우울한 건 모두 파란하늘에 묻어버려]
[오늘도 너에네 달려가는 이 마음 난 정말정말 너를 좋아해]
이런 가사인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노랫말이에요.
희한하게도 이 노래만 들으면 아빠 생각이 또 나요.
힘든 추억과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막아두고 잊어버리고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잘 극복해서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러다 보면 눈물보다 웃음의 가치가 더 크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눈물보다 더 처연한 웃음도 있을수 있다는 걸 말이에요.
아빠, 지상은 내리쬐는 열로 달궈져서 무척이나 뜨거워요.
아빠도 이 지옥불 같은 뜨거움 느껴보셔서 아시겠지만.
그 날의 기억으로 돌아가면. 너무 슬퍼져요.
아직도 문득문득 아빠와 함께 했던 투병기간을 떠올리면.
그 기억의 가장자리가 날카롭게 뾰족해서 마음을 다치곤 해요.
이렇게 한 사람의 존재가 세상에서 완벽하게 지워질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요.
이걸 인정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겨진 우리까지 슬픔에 잠식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려고 해요.
아빠, 우리 아빠.
뽀야를 비롯한 우리 가족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어요.
너무 걱정 마세요.
때론 감정을 앞세워 다투기도 하고.
뾰로통하게 삐치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삐걱대더라도 잘 굴러 가고 있으니까.
물론 아빠라는 거대한 이정표가 뚝 떨어져버려서.
한동안 당황하기도 했지만 말이에요.
그 동안 잘 해드리지 못한 게 너무 많아서.
일일이 손에 꼽아보기도 죄송한데요.
그냥, 좋은 것만 기억해 보려고 해요.
400일, 500일, 600일....그렇게 흘러가겠죠.
그래도 이런 날을 굳이 기억하려 드는 건.
아빠와 관련된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예요.
우리가 덧없이 뒤로 미뤄둔 약속을 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에요.
앞으로 뽀야에게 어떤 기분좋은 일이 닥쳐도.
아빠가 함께 하실 수 없기에.
뭐 하나 빠진 것 같이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겠지요.
그래도 모든 공을 아빠께 돌리고 싶어져요.
이제 와서 하는 얘기이긴 하지만.
아빠의 모든 것이 다 찬란하고 아름다웠어요.
그렇게 열심히 생과 사투해 주셔서 감사해요.
언제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아빠, 아빠, 뽀야가 진짜 진짜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 이 이세상에 저를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생일이 뭐 별 거 있나요?
가족끼리 맛있는 거 먹으면서 즐겁게 보내면 되는 거지.
뽀야를 지켜주시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아빠, 뽀야 힘낼 테니까.
쭉 지켜봐 주시기에요?
그렇게 믿고 열심히 나아가 볼게요.
아빠 파이팅! 뽀야 파이팅! 우리가족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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