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효do

31.때 묻은 장판

by 뽀야뽀야 2020. 5. 8.
반응형

우리집 거실에는 전기장판이 깔려 있다.

그리고 거기 어딘가에는 이런 시커먼 자국이 있다.

이것은 바로 '엄마의 시간'을 나타내 주는 자국이다.

엄마의 낡은 나일론 바지의 검은 물이 뜨끈한 장판과 만나

이루어진 검은 자국.

"얼마나 저기서 뭉갰으면, 저런 자국이 다 생겨?"

의아해 하는 나를 보고 허탈한 웃음을 짓는 엄마.

보기 흉한 자국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엄마의 외로운 시간들을 함께 해 준 TV.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장판이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미처 엄마의 슬픔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을 때

엄마가 따끈한 장판 위에서 노곤한 몸을 누이고 

꾸벅꾸벅 잠이 들었을 때 

뽀야도 하지 못한 그런 큰 일을

대신 해준 것이 바로 이 장판이 아닐까.

거실을 지나 다니다가 이 자국을 보면

가슴 한 곳이 찡해지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이리라.

일단, 돈을 벌게 되면 엄마 좋은 바지 하나 사드려야지.

엄마의 마음, 나의 마음.

오늘도 엄마는 그 낡은 바지를 입고 TV앞에 앉아 있다.

추운 겨울을 고마운 장판 너로 인해 힘겹지 않게 보냈다.

여름이 되면 우리 엉덩이 배기지 않게 또 서늘하게

우리를 지켜줄테지.

누구보다 낮은 자리에서 애쓰는 너의 노고를 내가 기억할게.

사랑하는 우리 엄마를 앞으로도 지켜줘.

 

반응형

'효do' 카테고리의 다른 글

33.나 대화법  (0) 2020.05.23
32.나를 두고 가는 시간  (0) 2020.05.09
30.슬픈 꽃  (2) 2020.05.07
29.솔직함이라는 양날의 검  (0) 2020.05.04
28.커튼 걷는 것을 잊은 사람들  (0) 2020.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