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do53 32.나를 두고 가는 시간 시간이 손살 같이 흐른다. 눈 깜빡할 새에 일주일이 훌쩍 지나간다. 오늘 토요일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 아, 내일 또 대청소 해야 하는구나. 일요일이면 우리 사랑스런 고목이한테 또 물을 줘야 하네. 와, 정말 주말 빨리 온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주말에 더 해이해지지 못하는 편치 못한 주말, 경계하는 주말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시간은 정말 놀랍게도 나이에 맞춰서 흐르는 것 같다. 10대는 시속 10km로, 20대는 시속 20km로, 30대는 시속 30km로...... 이렇게 널뛰는 시간을 보고 있자니, 지금 현재가 가장 행복할 때라는 것이 새삼 더 다가온다. 요즘 나는 심적으로 100년 쯤 늙은 것 같은데 그렇다는 얘기는......!!(허걱) .. 2020. 5. 9. 31.때 묻은 장판 우리집 거실에는 전기장판이 깔려 있다. 그리고 거기 어딘가에는 이런 시커먼 자국이 있다. 이것은 바로 '엄마의 시간'을 나타내 주는 자국이다. 엄마의 낡은 나일론 바지의 검은 물이 뜨끈한 장판과 만나 이루어진 검은 자국. "얼마나 저기서 뭉갰으면, 저런 자국이 다 생겨?" 의아해 하는 나를 보고 허탈한 웃음을 짓는 엄마. 보기 흉한 자국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엄마의 외로운 시간들을 함께 해 준 TV.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장판이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미처 엄마의 슬픔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을 때 엄마가 따끈한 장판 위에서 노곤한 몸을 누이고 꾸벅꾸벅 잠이 들었을 때 뽀야도 하지 못한 그런 큰 일을 대신 해준 것이 바로 이 장판이 아닐까. 거실을 지나 다니다가 이 자국을 보면.. 2020. 5. 8. 30.슬픈 꽃 벚꽃이 피어도 구경도 못 가고. 너무 예쁜데 왜 꽃을 보면 슬프지?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니면 꽃에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었나?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들을 바라보자면 아름답다는 것보다는 슬프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는 아니지만 그래도 꽃은 나무의 생식기관이고 어쩌면 부끄러운 부분인데 어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자연의 섭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묘함이 있다. 게다가 매화꽃을 보면 그의 희생정신이 너무 슬프다. 열매는 매실로 정말 맛있고 꽃은 아름답다. 길가를 지나다 보면 울타리 경계마다 만발한 진달래며 개나리가 멋지고 산책길에 피어있는 이름모를 들꽃들도 귀엽다. 뽀야는 꽃도 함부로 꺾지 않는 초 조심성 있는 사람이다. 그런 걸 조심성 있다고 표.. 2020. 5. 7. 29.솔직함이라는 양날의 검 우리는 항상 듣는다. 솔직하게 살라고. 그 날은 고객센터에 문의할 것이 좀 있었다. 본인이 못 갈 것 같아서 대리인 서류를 준비하려는데 엄마가 옆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뭘 그런걸 묻니 너는(그냥 본인인 척 하면 되지)~" 이게 화를 낼 만한 일인가? 규칙을 지키려는 나와 어물쩍 넘어가려는 엄마. 솔직함은 정말 세상 살 줄 모르는 아이의 해맑은 무기인가. 솔직함이 나를 해치는 무기가 될 줄이야. 오히려 세상의 부정을 베어버릴 든든한 검이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자기 하나 편하자고 그런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을 거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니까 또 뭐라 하기도 애매하고. 엄마랑 다툴 때마다 엄마가 10년씩 늙는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상처는 쌓이고 쌓여서 누적되어 가는 거라고. 하지만 상처 없.. 2020. 5. 4. 28.커튼 걷는 것을 잊은 사람들 오늘은 어디에나 있을 그런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싶었다. 왜 내 마음은 이렇게 무겁지? 기분이 우울해, 벗어나고 싶어. 이런 생각 한 번 쯤은 누구나 해봤음직 하다.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커튼을 걷는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마음도 때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로 커튼이 쳐져 있는 거라고. 누군가가 와서 커튼을 걷어주면 다시 환하게 햇살이 비칠 거라고. 자기 자신이 걷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때로는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가서 커튼을 걷어주는 게 어떨까. 마음을 환하게 비추세요. 이런 마음이 전달 되게끔. 사업에 실패해서, 아파서, 일상에 찌들어서, 경제적 부담이 커서, 또는 인간관계가 잘 안돼서, 그 밖에 여러 일들로 우리는 아프고 또 아프.. 2020. 5. 3. 27.동화 같은 마을 요즘 날이 많이 좋아졌고 집에서 운동하기에는 전기세도 많이 들고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산책을 하게 됐다. 물론 마스크는 꼭꼭 착용하고. 이 단지가 나무가 많다. 그래서 걷고 있자면 여기저기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꿈에 그리던 그런 동네라고나 할까. 햇살이 나무에 걸려서 쫙 바닥에 흩뿌려지면 그 반짝임이 너무나 아름답다. 엄마와 나는 두팔 간격으로 걷는다. 새소리가 나는 것은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신호라고 누군가 그랬었다. 어떤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고 이렇게나 새들이 아름답게 지저귈까. 때론 모든 게 동화 속 일들만 같다. 지긋지긋 했던 현실도 그저 동화처럼. 삶은 멀찍이서 바라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비극이다. 라는 말도 있었지. 우리가 산책할 수 있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고 식물들이.. 2020. 5. 1. 26.우리집 미용사 언젠가부터 내 앞머리는 엄마가 잘라주게 되었다. 나는 미적 감각이 둔한 편이고 머리스타일이나 옷차림에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도 편하게 내 머리를 만져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힘을 줘서 그런지 몰라도 일명, '사랑이 앞머리'가 되어버린 적이 있긴 했다. 너무 짧게 치다보니 눈썹위를 훌쩍 웃도는 앞머리가 되어버렸지. 근데 그건 그 나름대로 또 유행을 선도했다. 학교 다닐 때 일인데 나의 짧은 앞머리가 상큼하다며 너도 나도 다 앞머리를 내곤 했으니까. 여자아이들이란 다 그렇지. 주변을 많이 의식하고 부러움이 심하고 별거 아닌 일로 질투도 하곤 하지. 근데 그런 모습이 나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타고난 것 같다. 사고방식 자체가 틀려먹었어. 어느정도 사회가 요구하는 '여.. 2020. 4. 29. 25.카네이션 학교 다닐 때는 종이접기로 카네이션 만들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일할 때는 생화로 카네이션 준비했었지. 어째 가면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이런 것은 다 상술이야. 마음이 중요한거지! 라고 말해본다. 아빠는 지금까지 내가 선물한 모든 것을 금고에다가 보관해 두었다. 우연히 금고를 들여다보게 되면서 알게 된 바이긴 하지만. 편지와 카네이션 브로치까지도. 아마 이번에도 보관하실 것 같아서 오래가는 조화를 준비해 보았다. 절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고.(흠!흠!) 좀 여유가 있다면 지역경제도 살릴 겸 화훼 농가를 응원할 겸 생화 바구니를 사고 싶은데 지금의 나는 삶에 찌들어 있다. 그래서 정성들여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 내용을 블로그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아빠는 아시겠지. 또 내 앞에서는 .. 2020. 4. 28. 24.다큐를 찾아서 어느날 엄마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이런이런 다큐를 봤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는 것. 처음에는 몰랐지. 이 한 마디가 얼마나 우리를 괴롭힐지. 두루뭉술한 한 마디의 폐해랄까? 일단, 키워드가 없고 방송 시간대만 알고 방송사도 모른다. 망망대해에 쪽배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고급진 소스가 있으니 한 번 노를 저어보기로. 찾다보니 감동적인 사연이 정말 많았다. 그러다가 레이더에 걸린 프로그램들이 있었으니 바로, 사랑의 가족,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멜로다큐 가족, 인간극장 등등...... 결국 친구분이 말씀하신 감동적인 다큐 그 자체를 찾지는 못했다. 그래도 찾는 과정에서 뒷골이 땅겼지만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 뜬금없었던 정보. 지상파 말고도 케이블에 종편.. 2020. 4. 28. 23.제철에 나는 음식 엄마가 갑자기 건강 얘기를 하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철에 나는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다는 것. 엄마의 진지모드는 뜬금없고 때를 가리지 않는 편. 그날도 아무런 맥락 없이 갑자기 건강 얘기를 하게 됐다. 아, 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2012~)가 틀어져 있어서 그랬나 보다. 요즘 같은 봄에는 냉이며 두릅이며 쑥이나 달래 햇마늘대 같은 것 들을 먹어줘야 생기가 돈다는 그런 말씀. 근데 햇마늘대는 처음 들어봐서 신기했다. 마늘이니까 알싸하겠거니 그렇게 생각했지. 산책하다보면 쑥이 정말 도처에 있다. 이 동네가 한적하기는 하지만 아직 도로 곁이나 아파트 화단 같은 곳에는 제초제를 뿌리기 때문에 저건 그림의 떡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걸 캐야 한다고, 쑥 개떡이 먹고 싶다고. 정말 쑥.. 2020. 4. 26. 이전 1 2 3 4 5 6 다음